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2세 (문단 편집) == 여담 == * 젊은 시절 외모가 [[제프리 다머]]와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sarevich_Nicholas_Alexandrovich.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effrey-dahmer.jpg|width=100%]]}}} || || '''니콜라이 2세''' || '''제프리 다머''' || * 같은 망국의 군주라는 점에 있어서 일가와 함께 [[대한제국]]의 [[고종(대한제국)|고종]], [[순종(대한제국)|순종]]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삶에는 망국의 군주라는 점 외에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고종은 일제에 의한 독살 의혹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삶을 살다 갔으며, 순종의 경우 [[일본 제국]]의 [[천황]]보다는 낮지만 다른 [[화족]]들보다는 높은 [[이왕]]으로 예우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심지어는 [[메이지 덴노]]의 배려로 군함을 타고 [[유럽]] 여행을 간 적도 있다. 대신 순종은 [[김홍륙 독다 사건|어린 나이에 독약으로 살인미수를 당해서]] 치아를 모두 잃고 20대부터 틀니로 살았기에[* 산성 물질을 커피로 위장하여 먹였기에 치아 뿐만 아니라 잇몸과 치조골까지 녹아 치아가 다 빠진 것이다.], 니콜라이처럼 살해당하지는 않았지만, 21세기처럼 임플란트 수술이나 고도의 영양학에 의해 체계적으로 설계된 유동식이 있던 시대도 아니니 생존 기간 내내 식이에 문제가 있어 건강이 전반적으로 항상 좋지 않은 편이어서 일본 정부의 관리를 받았지만 삶의 질은 나빴다.[* 니콜라이 2세가 사형만 안 당했어도 순종보다 오래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정부 차원의 특별대우와 경호 환경속에 살았음에도 순종은 50대 초반에 병들어 죽었다.] * 니콜라이 2세는 [[대한제국]]의 고종을 황제로 인정한 군주였다.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나서 니콜라이 2세의 황제 인정 통보를 기다렸고 거절 당할까 봐 노심초사했으며 니콜라이 2세에게 (황제) 인정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고종의 노력이 먹혔는지 니콜라이 2세는 1897년 12월 20일에 서양 열강 중 제일 먼저 고종에게 전문을 보내 칭제건원을 인정하고 축하했다. 이에 고종은 미친 듯이 기뻐했으며 아관파천 때도 러시아 공사관에 자신의 목숨을 의탁할 정도로 친러정책을 펼쳤다.[* 출처: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 159~160p. A.말로제모프, 석화정 번역, 지식산업사 출판][*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당장 조선을 둘러싼 외국 열강들 중에서 일본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려던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동맹국이었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 대륙 열강은 조선에 관심이 없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한 이후 조선에서 손을 뗐다. 만약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조선은 1910년이 아니라 청일전쟁이 끝난 1895년에 이미 일본한테 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제국의 공사였던 베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의화단 운동]] 때 대한제국에 출병을 권유하는 등 정치적 도움뿐만 아니라 총과 같은 물자적 지원을 제법 해줬으며[[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388222287|#]]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짐은 우리가 조선을 차지하는 걸 원하지는 않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차지하도록 놔둘 생각도 없소. [[러일전쟁|그건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오.]]" >--------- >1901년 니콜라이 2세가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동생으로 해군 원수. 1899년 방한하기도 했었다.]에게 한 말(Christopher Clark,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p. 176) * 한편 고종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때 [[민영환]]을 보내 여러 선물을 주었다. 개중에는 화려한 장농이나 백동향로,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743753?sid=103|#]] * 혁명으로 인해서 목숨까지 잃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와도 비교된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인간적인 면모는 굉장히 좋았지만 군주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는 점, 아내와 자식들까지 혁명에 휘말려 그 끝이 좋지 못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또 왕비가 독일어권 출신 외국인이었고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실패했다는 점도 똑같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니콜라이 2세의 가족사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프메5 가족사진.jpg|width=100%]]}}} || || 니콜라이 2세 일가의 가족 사진 || 프린세스 메이커 5의 오프닝에 나온 가족 사진 || [[프린세스 메이커 5]]의 [[https://youtu.be/KHqfas0Homw?t=11|오프닝 영상]]에 나오는 가족 사진은 니콜라이 2세의 가족 사진을 패러디했으며, 혁명이 일어나 왕가가 몰살당하고 프린세스 후보인 딸이 게임상의 인간계로 피신했다는 설정이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40-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tamp-1024x516.jpg|width=100%]]}}} || ||<-2> ▲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이 있는 은화와 우표 || [anchor(회중시계앵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20380170_tp.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20380042_tp.jpg|width=100%]]}}} || ||<-2> ▲ 그의 초상화가 들어가 있는 [[IWC]] 회중시계 || *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 라스푸틴, 그리고 러시아 제국 말기의 모습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마지막 차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위에 서술된 내용들을 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어서 진부하지 않아 쉽게 접근할수있다. * 증조할아버지이자 같은 제호를 쓰는 [[니콜라이 1세]]와는 달리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팬이었으며, 딸들의 이름도 [[예브게니 오네긴]]의 등장인물에서 따왔다. 니콜라이 1세는 문학에는 관심이 없었음에도 반골적인 푸시킨을 매우 싫어하여 푸시킨의 글만큼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정독했다고 한다. 니콜라이 2세의 가족사진이 컴퓨터 작업으로 색깔이 입혀졌다.[[https://russkiymir.ru/news/297835/|#(러시아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